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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김씨 魯于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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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당쇠 댓글 0건 조회 6,112회 작성일 06-07-0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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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현황: 재교 진행중 (2006.7.5)
완료예정일: 2006. 8. 10
입력 샘플 : 노우유고 서문

1. 1. 1.  노우유고서(魯于遺稿序)

나의 벗 노우(魯于) 김성원(金聖遠) 군은 나보다 다섯 살이나 덜 먹었지만 내가 한결같이 존경하여 혹시라도 친압한 적이 없었던 것은, 그의 재주가 보통 사람보다 월등하게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신중한 행실과 일을 처리하는 도량을 사람마다 사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가끔 잠재했다가 드러나는 그 침울(沈鬱)한 기와 강개(慷慨)한 뜻에 있어서는 김군을 깊이 아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데, 내 역시 알고 있었다.
김군의 자질은 바로잡지 않아도 도(道)에 근접하였고 식견도 발분(發憤)하지 않아도 스스로 터득하였는가 하면 몸가짐을 법도에 꼭 맞추지 않아도 먹줄과 잣대처럼 반듯하였고 의논할 적에 굳이 피차의 한계를 두지 않았으나 잘 선택하고 잘 지키었다. 이외에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종족이나 사람과 일을 할 때 신중하고 예절이 있었으므로 노소(老少)와 귀천(貴賤)을 막론하고 돌아서면 모두 군자(君子)라고 말하였다.
나라가 망한 뒤에 서구의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이상한 종교가 우주에 가득 차자 중국만 침몰한 것이 아니었다. 김군이 이에 길게 탄식하고 매우 노한 나머지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통곡하기도 하면서 유명한 산이나 외딴 바닷가를 두루 노닐며 일세(一世)를 경시하고 공허(空虛)한 데로 도피하려고 하였으니, 수신(修身)을 끝까지 잘한 경우가 드물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조우한 바가 달라 그에 따라 자취도 변한 것인가? 그러나 김군이 지키는 바가 견고하여 한결같이 의리에 따라 변함이 없다는 것을 그 누가 알겠는가.
김군이 평소 저술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기었는데, 이는 저술이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행하여 마음에 터득하지 못한 채 저술만 일삼는 것을 싫어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관을 만나 마음에 들거나 사물에 부딛쳐 흥이 날 경우에는 대뜸 시문(詩文)을 지어 의사를 표현하였는데, 음률의 격이 질박하고 왕성하며 기운의 추향이 맑고 굳건하여 속박되거나 기괴한 태도가 없어 그의 삼람됨과 같았다. 그러나 매양 웃고 버리면서 말하기를 “이게 기러기의 발톱이나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상하게도 하늘이 그에게 비범한 자질을 부여해 놓고 질병에 시달리게 하고 운명의 저지를 받게 하였는가 하면 조우한 바가 극도로 좋지 않아 그의 재주와 뜻을 끝까지 펼치지 못하였다. 이는 아마도 대운(大運)이 밀어닥칠 적에 청명(淸明)한 사람이 먼저 꺾이어 세상이 혼란에 빠지고 만 것이 아닌가 싶다. 세상의 변고로 인해 김군도 보존할 수 없었으니, 김군이 남긴 조박(漕粕)이 반드시 후세에 전해지리라고 보장할 수 있겠는가?
김군 같은 재주와 뜻으로 시종(始終)이 있었다면 필시 선현(先賢)의 은미한 말뜻을 밝히어 후인(後人)들의 이목을 열어주었을 것이고 정도를 옹호하고 사도를 배척하며 주(周) 나라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치는 의리를 천명(闡明)하여 세상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입밖에 튀어나오고 붓끝으로 놀린 한 마디 말과 반쪽의 서간(書簡)을 후세에 전하는 것이 어찌 김군의 뜻이겠으며 김군을 아는 사람들이 기대한 바의 만분의 일이나 되겠는가. 그렇다면 이 책이 전해지면 김군이 다행스럽고 전해지지 않으면 김군이 다행스럽지 않을지 모르겠다. 아! 애석하다.
김군의 아들 난기(鸞基)가 유고(遺稿)를 간행하기 앞서 나에게 수정과 서문을 부탁하였는데, 그의 뜻은 ‘친(先親)이 뜻한 바 사업을 이미 이룩하지 못하였으므로 전할 길이 없지만 이 유고가 그 영항(影響)을 증명할 수 있고 또 선친의 재주와 뜻을 이 책으로 인해 전해질 수도 있다.’고 여긴 것이다. 이야말로 길이길이 효도하는 것이니, 어떻게 이 책을 간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글 구절의 사이에 간혹 점을 찍은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그 또한 세세하게 삭제하여 본래의 기풍을 손상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뒤돌려 보냈다.
계사년(癸巳年)10월 상순에 죽계(竹溪) 안소(安塑)는 서문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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