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천집 최종교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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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석철 댓글 0건 조회 5,149회 작성일 08-02-28 16:22본문
국역(國譯) 월천집(月川集)은 조선조(朝鮮朝) 초엽에 살다 가신 관인학자(官人學者) 월천(月川) 김길통(金吉通)선생의 시문(詩文)을 모은 월천집(月川集)을 이해하기 쉽도록 우리나라말로 옮긴 것이다.
월천선생은 조선이 건국 된지 16년 후인 1408년에 태어나시어 건국 초 문화의 꽃이 만개한 성종조(成宗朝)에 돌아가시었는데 당시 기호파(畿湖派)의 대학자였으며 세종(世宗)14년(1432)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장원급제하여 출사(出仕)하여서는 언로(言路)를 열것을 주장하고 목민관(牧民官)이 되어서는 백성들을 내 몸같이 아끼고 사랑하시는 선정(善政)을 펴심이 왕조실록에 전하여오고 있다.
월천선생은 세종대왕의 고명대신(顧命大臣)으로서 끝내 단종(端宗)을 보필하지 못한 것을 자책(自責)하시고 당시 저술한 문집을 불살라버리어 집에는 시(詩) 한편이 전(傳)함이 없으나 뒤에 후손들이 사방(四方)에서 근근이 모은 시문(詩文) 몇 편이 전하여오고 있으나 한문(漢文)으로 되어 읽기도 어렵고 뜻도 몰라서 마침내 자손들이 뜻을 모아 국역(國譯)하기로 결의하고 청수(聽水) 김상수(金象壽) 선생께 부탁하니 흔쾌히 응하여 주심으로 자손들의 숙원을 이루게 되었다.
월천선생은 조선이 건국 된지 16년 후인 1408년에 태어나시어 건국 초 문화의 꽃이 만개한 성종조(成宗朝)에 돌아가시었는데 당시 기호파(畿湖派)의 대학자였으며 세종(世宗)14년(1432)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장원급제하여 출사(出仕)하여서는 언로(言路)를 열것을 주장하고 목민관(牧民官)이 되어서는 백성들을 내 몸같이 아끼고 사랑하시는 선정(善政)을 펴심이 왕조실록에 전하여오고 있다.
월천선생은 세종대왕의 고명대신(顧命大臣)으로서 끝내 단종(端宗)을 보필하지 못한 것을 자책(自責)하시고 당시 저술한 문집을 불살라버리어 집에는 시(詩) 한편이 전(傳)함이 없으나 뒤에 후손들이 사방(四方)에서 근근이 모은 시문(詩文) 몇 편이 전하여오고 있으나 한문(漢文)으로 되어 읽기도 어렵고 뜻도 몰라서 마침내 자손들이 뜻을 모아 국역(國譯)하기로 결의하고 청수(聽水) 김상수(金象壽) 선생께 부탁하니 흔쾌히 응하여 주심으로 자손들의 숙원을 이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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