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친회 소식 글답변
본문 바로가기
회원가입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검색어 필수
검색
인기검색어
조씨
이씨
전자족보
창녕
전주이씨
최씨
임영대군
FAQ
1:1문의
접속자
5
새글
메인메뉴
전체메뉴열기
회사소개
하위분류
인사말
주요 연혁
사업 소개
주요 사업실적
채용정보
조직도
오시는 길
족보이야기
하위분류
족보(族譜)이야기
항렬(行列) 항렬자
성씨의 유래
친족간 계촌법
사교간 호칭법
종친회 주소록
족보보는 방법
고금관작 대조표
왕실연대표
예절이야기
하위분류
나이 표현 한자
삼강오륜
호칭을 표현 한자
제례순서
축문 쓰는법
지방 쓰는법
고사 지내기
경조문 서식
맹자의 가르침
주자십회
한자이야기
하위분류
한자생성원리
부수의 원리
옥편이야기
한자의 3요소
한자의 6특징
서예이야기
영자팔법
여섯가지 글씨체
한자를 쓰는방법
지명유래
지명한자
팔도의 유래
음양오행이야기
하위분류
24 방위도
음양오행
사상의학
24 절후표
태극기와 사신도
관상을 보는법
명당을 고르는법
주도유단
지옥이야기
탄생한날
결혼기념일
오십재과
전자족보 소개
하위분류
전자족보 개요
인명조회 방법
자손록 보기
세계도 보기
화보, 동영상 보기
각종 통계자료 보기
한자교육 컨텐츠
제작중인 문중
가문 커뮤니티
하위분류
공지사항
자유게시판
뿌리상담실
갤러리게시판
종친회 소식
작업현황
동영상 게시판
유튜브게시판
종친회 위치
작업자 작업지침
인터넷족보
전체메뉴
회사소개
인사말
주요 연혁
사업 소개
주요 사업실적
채용정보
조직도
오시는 길
족보이야기
족보(族譜)이야기
항렬(行列) 항렬자
성씨의 유래
친족간 계촌법
사교간 호칭법
종친회 주소록
족보보는 방법
고금관작 대조표
왕실연대표
예절이야기
나이 표현 한자
삼강오륜
호칭을 표현 한자
제례순서
축문 쓰는법
지방 쓰는법
고사 지내기
경조문 서식
맹자의 가르침
주자십회
한자이야기
한자생성원리
부수의 원리
옥편이야기
한자의 3요소
한자의 6특징
서예이야기
영자팔법
여섯가지 글씨체
한자를 쓰는방법
지명유래
지명한자
팔도의 유래
음양오행이야기
24 방위도
음양오행
사상의학
24 절후표
태극기와 사신도
관상을 보는법
명당을 고르는법
주도유단
지옥이야기
탄생한날
결혼기념일
오십재과
전자족보 소개
전자족보 개요
인명조회 방법
자손록 보기
세계도 보기
화보, 동영상 보기
각종 통계자료 보기
한자교육 컨텐츠
제작중인 문중
가문 커뮤니티
공지사항
자유게시판
뿌리상담실
갤러리게시판
종친회 소식
작업현황
동영상 게시판
유튜브게시판
종친회 위치
작업자 작업지침
인터넷족보
종친회 소식 글답변
종친회 소식 글답변
이름
필수
비밀번호
필수
이메일
홈페이지
옵션
HTML
제목
필수
내용
필수
웹에디터 시작
> > > > 허임의 출생년도와 사망년도가 대략 1570~1647년이라는 추론이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고, 출생지가 어디인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 그가 쓴 침구경험방 서문 끝부분에 하양허임(河陽許任)이라고 밝혀 하양(河陽)이 그의 본관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하양허씨세보(河陽許氏世譜)를 검토하면 허임은 하양허씨 문경공파 21세손으로 허락(許珞)의 아들이고, 벼슬은 가선대부(嘉善大夫-종2품의 품계)로 양주목사(楊州牧使)를 지낸 것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 허임의 묘는 원래 공주군 장기면 무릉리에 있던 것을 그의 부모 묘소와 아들의 묘소가 있는 공주군 우성면 한천리로 1981년에 이장되어 있습니다. > 허임의 출신에 대해서 조선왕조실록에는 그의 부친은 허억봉(許億逢) 혹은 허억복 혹은 許億福)이라는 이름의 악공(樂工)으로 관노(官奴)였고, 그의 모친은 사비(私婢)였다고 전합니다. 이러한 사정의 배경에는 그 시대로부터 약 100여년을 거슬러 올라가 허임 선생의 조상이 겪었던 역사적 사건과 관계가 있습니다. > 허임의 9대조는 세종대왕 때 좌의정을 지낸 문경공 허조(許稠)였습니다. 그러나 그 허조(許稠)의 아들 허후(許?: 허임의 8대조인 허눌의 친형)는 수양대군의 정권장악에 반대하다 귀양을 가서 교형을 당하고, 그 허후의 아들인 허조(許稠: 허임의 7대조인 허담의 친형, 허후가 자식이 없어 허눌의 큰아들을 양자로 들였음)는 사육신 등과 함께 단종복위를 기도하다 발각되어 자결하였고, 이에 연루되어 허조(許?)의 두 아들도 교형을 당하였습니다. > 그 일이 있던 세조 2년(1456년) 당시 허조(許?)의 손자 허충(許忠)은 어린 아이였으므로 괴산으로 유배되었다가 관노가 되는 것으로 하였고, 그 당시 허임의 조상도 장손 허충의 집안과 함께 괴산으로 유배되어 관노로 부처된 것입니다. 허임의 7대조인 허담의 묘가 괴산에 있는 것이 이 사실을 뒷받침해 줍니다. 그 후 세조 10년(1464년)에 사면이 되었으나, 허임의 조상들은 복권이 늦어지고, 한번 관노가 되면 쉽게 그 신분을 벗어나기 어려운 시대사정으로 허임의 아버지를 관노라고 한 것으로 풀이 됩니다. > 하양 허씨 족보상에는 허임의 아버지는 허락(許珞)으로 되어 있고, 벼슬이 한성판윤이라고 되어 있어 조선실록의 기록과 차이가 있습니다. > 이는 당시 자식이 벼슬을 하면 그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도 사후에 벼슬을 내려 위계질서를 세우려는 유교국가의 제도가 있었고, 이름이 조선실록의 기록과 족보상의 기록이 다른 것은 허임의 부친이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었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 허임기념사업회 이사회 개최 2005년 9월9일 허임기념사업회 이사회가 종로구 와 룡동 21번지 사무실에서 ... 침구의 별도 선발 경국대전 명시 시민의신문 허임 역사발굴 특집 보도 > > 허임 기념사업회 > > >
웹 에디터 끝
링크 #1
링크 #2
파일 #1
파일 #2
자동등록방지
숫자음성듣기
새로고침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취소
게시물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회원아이디
필수
비밀번호
필수
자동로그인
회원가입
/
정보찾기
접속자집계
오늘
301
어제
397
최대
1,584
전체
452,665
회사소개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버전
Copyright ©
gamoon.com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